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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스크랩

비지니스2.0, 작은 것이 강하다



한 때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이 티파니에서 보석을 사거나 프라다에서 핸드백이나 구두를 사는 것 만큼이나 어려울 때가 있었다. J. P. 모건 시대에 일반인이 금융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꽃남에서 금잔디를 깔보던 초기 구준표의 표정을 예상해야 했다.

“서민 주제에.”


단적인 예로, 당시 은행가에서 지점 운영은 당연히 없었고 월가의 본점만 운영했으며, 그들은 오직 VIP만 상대했다.
(당시 금융가의 분위기와 현대 금융의 발전사를 보고 싶다면
‘모건가(The House of Morgan)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러한 금융가의 교만한 구습을 깨고 금융을 민주화, 대중화시킨 것은 이탈리아 출신의 이민자 A. P. 지아니니의 공덕이다. 지아니니는 어릴 때부터 담이 크고 이재에 밝은 인물로, 부둣가에서 이민자들과 함께 자라났기 때문에 서민의 고생과 동시에 그들의 저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눈으로 보기에 누구보다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잘 갚을 수 있는 것은 서민이었다. 돈이 없기 때문에, 또 그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채무상환 능력도 있었다고 본 것이다.

(지아니니는 1870년 오늘날의 실리콘벨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태어나서 1949년 같은 캘리포니아의 산 마테오에서 죽었다.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마이크로크레딧이란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1976년, 해당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라민 뱅크가 법인화된 것은 1983년이다. 다시 말해 ‘가난한 자’를 위한 금융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몇 가지 차이점이 존재하긴 해도 약 100년 전에도 존재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지아니니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되어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세계최대 상업은행 중 하나인 BOA(Bank of America. 전신은 Bank of Italy)다. 지아니니는 월가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융서비스의 눈높이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는 서민을 상대했고, 그들을 위해 지점을 운영했다. 당시 은행이 오후 3시면 문을 닫았는데, 그의 은행은 밤늦게까지 일하는 서민들을 위해 9~10시까지 문을 열었다.

물론 이 은행가가 자선사업가는 아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리고 정신의 뿌리부터 사업가였다. 즉 자신의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 성공의 기반을 다른 은행들은 놓치고, 버리고, 관심을 끓은 시장인 사회 피라미드의 바닥 시장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의 블루오션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그만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을 만들었고 그것이 고고하기 짝이 없던 당대 은행가와 차별화됐던 것 뿐이다. BOA의 성공은 ‘무엇이 옳으냐’(what is right)라는 도덕적 판단과 함께 ‘무엇이 실제로 되느냐’(what works)라는 질문에 대한 지아니니의 경영자로서의 판단과 실행이 결합한 산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지아니니의 BOA에 대해 두 가지만 덧붙이자면.

첫째, 지아니니가 79살로 영면했을 때 수많은 서민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오늘날 월가의 어떤 은행의 수장이 죽었을 때 그와 같은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었을까.

둘째, 지아니니의 BOA는 대공황과 최근의 금융위기도 성공적으로 견뎌냈다. 그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대중을 중심으로 한 그의 비즈니스 모델은 거품이 없는 소위 기업 경영의 펀더멘털, 기업가 정신, 소비자에 대한 헌신, 그에 기초한 전략과 운용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위 자료는 지아니니의 일화에 대한
미국 PBS 방송자료를 상당부분 참조했다.)


눈을 돌려 패션계를 보자. 최근 명동에서 가장 큰 매장을 확보하고 있는 패션브랜드 둘을 꼽으라면 스페인계의 ‘자라’와 일본계의 ‘유니클로’가 아닐까 싶다.


사실상 그들은 명동,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명품 브랜드들이 죽을 쑤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세력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브랜드들이다. 이들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선명한 예는, 유니클로의 야나기 회장이 그같은 지속적 성장세에 힘입어 최근 수 년동안 일본 최고의 부자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패스트 패션, 즉 유행이나 천차만별 취향의 버라이어티에 혁신의 스케일로서 대응하는 이 브랜드들의 ‘속도’(speed)와 ‘규모’(scale) 외에 또 한 가지 기존 상식에 대한 변칙을 찾아낸다면, 그들 성공의 공통분모가 ‘얼굴 없는 브랜드’라는 것이다.

브랜드 소비는 상품 소비와 다르다. 상품 소비는 기능을 소비하는 것이지만,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것은 브랜드에 첨가된 문화적 가치를 소비한다는 걸 의미한다. 티파니 보석과 프라다의 핸드백과 구두가 비싼 이유다. 앞서 언급한 초기 금융 서비스가 결코 서민과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것은 그들이 그만큼 냉담하고 무심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브랜드 가치라는 자산 손실에 대한 위험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브랜드 가치에 그 어느 산업계보다 민감한 것이 패션업계다. 사람들이 옷을 사는 경우 거기엔 기능성을 초월한 유행에 대한 민감함, 자기 표현의 욕구 같은 배경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이키, 캘빈 클라인 같은 업체들이 목숨 걸고 ‘짝퉁’을 막으려는 이유다. 브랜드는 그들의 자존심이고 생명줄이다.

그렇지만 자라와 유니클로는 그 브랜드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상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자라와 유니클로의 옷이 많이 팔리지만, 거리에서 누가 그 옷을 입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드물다. 그것이 유행에 민감함, 저가 생산·판매와 더불어 그들의 고속 성장과 지속 확장의 비결일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의 옷을 입지만, 결코 그들의 옷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은 그 묘한 이중 심리를 잘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꼭 교묘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서민의 ‘자존심’을 살려준 비즈니스 전략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비록 구찌와 프라다 같은 명성은 없을 지라도, 스타일업을 통해 일반인이 패션의 영역에서 자기 긍지를 지킬 수 있게 해준다면, 그것은 지아니니가 금융에서 했던 것과 같은 일을 자라와 유니클로가 패션업계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패션을 ‘민주화’하고 ‘대중화’하고 있다.

지아니니의 BOA, 유니클로와 자라는 금융위기 등 최근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그 성장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과연 우연일까. ‘작은 것의 강함’에 주목한 금융계와 패션계의 업체들과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그들의 비즈니스 전략이 영속하는 까닭은 정말 우연일까.

2002, 2003년 미국의 IT 버블 폭락이라는 대형사고를 맞이하고도 살아남은 기업들을 뭉뚱그려 설명하는 마케팅 용어인 ‘웹2.0′이라는 것도, 그 대표주자인 구글이라는 기업도 앞서 기업들과 공통분모가 많은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에 기초하고 있다.

구글의 사명은 한 마디로 ‘정보의 민주화’다. 2008년 구글 주주총회에 보내는
창립자가 보내는 편지 를 읽어보라. 그들의 연례보고서란 사업 성과와 이윤과의 관계 뿐 아니라, 얼마나 ‘정보의 민주화’란 사명에 그들이 근접해가고 있는지를 언급하고 강조하고 있다. 정보의 민주화가 그들에게 단순한 사탕발림이 아니라 ‘악하게 되지 말자’(don’t be evil)를 목표로 삼은 기업의 유형적 자원을 움직이는 무형적 정신이고 혼이라는 뜻이다.

구글은 검색엔진에서 출발해, 구글앱스에서 몇 가지를 실험하기 시작하더니, 인공위성 몇 개를 사들여 구글어스를 실험하더니, 그 아이템을 가지고 내비게이터 업계에 뛰어들었고, 안드로이드 OS를 들고 휴대폰 시장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이제는 MS의 아성이라 할 수 있는 PC 운영체계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무섭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구글의 성장과 확장세의 끝이 어디일지 또 무엇일지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아마도 구글은 앞으로 예상되는 위기와 혼란의 시대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이, 그 혼이 대중화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왜 지아니니의 BOA는 모건 스탠리 등이 장악한 월가를 흔들고 세계 최대의 상공은행을 이루었고 1930년대 대공황과 최근의 금융위기를 살아남았을 수 있었을까.

왜 유니클로와 자라는 급속한 성장세를 이루며 글로벌 브랜드를 이루었고, 얼굴없는 브랜드라는 역설적 원리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왜 구글은 IT버블 폭락의 위기에서 생존하였고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으며 무서운 확장세를 보이면서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까.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일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내 관찰의 결과는 그들이 모든 본래는 고급, 본래는 소수의 영역이었던 금융·패션·정보라는 브랜드를, 가치를, 서비스를 모두의 것으로 확장시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소수 독점의 영역을 포기하고 다수 대중화를 전략적으로 취했다는 점에서 ‘작지만’, 인간의 욕망이란 거품이 아니라 기본 욕구란 펀더멘털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강한’ 비즈니스 모델이며, 전략이며, 혼이다.

지구촌 경제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온 변화, 중국의 과잉생산 등 많은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이 위기를 뚫고 나갈 비즈니스는 무엇일까.

하나의 원칙을 제공하고 싶었다. 작은 것이 강하다.
거품이 아니라 펀더멘털을 택하라. 반석 위에 성을 세운다면, 파도가 몰아쳐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그것이 네트워크 정보 경제 사회에도 영속하는 비즈니스, ‘비즈니스2.0′이다.


출처 : www.bloter.net
원문 : http://www.bloter.net/archives/2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