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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ngs

[본문스크랩] 김근태를 밟고 가라

좀 과장하자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보편적 국민인식의 뼈대를 뒤흔드는 일이다. 협상의 근본은 주고받는 것이고,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이 많을수록 좋다는 게 보편적 인식이다. 그러나 한ㆍ미 FTA는 그렇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많이 내줄수록 잘된 협상이다. 그래서 실패한 협상일수록 더 좋다.


한국 국민들은 엄청나게 비싼 쇠고기를 사먹는다. 세계에서 거의 최고가 쇠고기를 먹는다. 지난 6년간 가장 많이 오른 외식품목 역시 쇠고기였다. 쇠고기를 먹는 한국 소비자들은 억울하다.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쇠고기 시장이 개방 안 됐기 때문이다. 개방이 안 되니 경쟁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말 없는 다수 서민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시장에 들어오기를 바란다. 경쟁이 가격을 내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적 정치인들은 FTA를 체결하면 광우병 소가 들어온다는 식으로 정직하지 않은 투쟁을 하고 있다"고 꾸짖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자동차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1997년부터 작년 말까지 현대차가 생산하는 그랜저 가격은 6.53% 내린 반면 아반떼는 18.24%, 쏘나타는 42.07% 올랐다. 그랜저는 수입자동차와 경쟁관계에 있지만 아반떼와 쏘나타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시장을 70% 점유하고 있는 현대차의 독점적지위가 낳은 당연한 결과다. 이런 독점적 지위 남용의 피해자는 소비자들이고, 그 과정에서 협력업체들의 피눈물 나는 희생이 동반됐으리라는 관측이다.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경제장관이란 사람들까지 손해보는 협상은 안 하겠다고 강조한다. 정직하지 못하다. 무엇이 손해보는 것이냐는 데 대한 설명은 없고 우리는 협상에서 이기겠다는 '정치구호'에 다름아닌 인기성 발언만 늘어놓는다. 개방에 따른 국내시장의 피해를 걱정한다. 맞는 말이지만 생산자 손실과 소비자 이익을 철저히 비교해 보아야 한다. 생산자들 목소리는 크고 그들의 손실은 눈에 보인다. 반면 소비자들은 침묵하고 그들의 이익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한ㆍ칠레 FTA 협상 때 포도 농가가 쑥대밭이 될 것이라고 했다. 키위 농가가 전멸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포도 농가 재배면적은 16% 늘고 가격도 10% 올랐다. 키위 농가 역시 재배면적이 늘었다. 대신 칠레에서 한국 휴대폰은 연평균 108%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마치 어장에 메기를 풀어놓으니 미꾸라지의 생존력이 강해진 것과 같다. 그것이 FTA의 진정한 목표다. 한ㆍ미 FTA에 어찌 희생자가 없겠는가. 그것은 구조조정의 기회비용이며 그런 측면에서 피해자들에겐 인도적 차원의 보상금이 주어져야 한다.


노 대통령은 "선진국 진입의 도전적 전략으로 개방하는 것"이라며 "FTA는 여러 나라와 하지만, 하는 김에 시장에서 제일 크고 기술적으로도 수준이 높은 미국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한판 붙으려면 강팀과 해야 한다. 축구 4강 신화를 이룩한 히딩크 감독 말대로 약자와 싸워 승수를 올리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물론 개방되면 경제의 비효율이 일거에 청산될 것이란 주장은 환상이다. 그러나 그런 환상을 부추긴 개방론자들의 무책임함을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개방에 대비해 내부 역량을 키우는 데 게을리한 진보론자(사실 이들에게 진보란 이름을 붙이기도 어렵지만)의 무능을 탓하고 싶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의 물적 토대를 탄탄히 하는 데 기여한 바 없다. '칼의 노래' 저자인 김훈이 "진보는 소수일 때 아름답다"고 한 말이 이해가 간다.


어느덧 한ㆍ미 FTA는 '끝장 협상' 국면까지 왔다. 이제 마지막 마무리 작업이 남았다. 31일 오전 7시가 데드라인이다. 정치권은 졸속협상이라고 비난하면서 FTA 연기론을 주장한다. 참으로 비겁하다. 그들은 FTA가 가져다 줄 잠재적 혜택은 외면하고 정치적 도전에 따른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다. 그들의 비겁함을 우리 미래세대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자발적 개방과 개혁의 기회'를 놓쳐버린 어리석음을 엄하게 꾸짖을 것이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FTA를 하려면 나를 밟고 가라고 뜨겁게 외쳤다.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이도 아닌 김 전 의장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한ㆍ미 FTA는 그를 밟고 가야 한다. 그것이 한국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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