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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ngs

쓸데없는 생각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면서..손톱을 깎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조금 전에 가스렌지에 올려놓은 물 끓는 소리가 들리는거였어요.

물이 끓어 넘치면 가스렌지 불이 꺼지고 가스렌지가 지저분해지는 것은 물론

가스가 새어 나와 집안이 가스로 가득 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와 함께 전화 벨소리가 들렸지요..

한시간 반 후에 친구와 약속이 있거든요..

그 녀석이 혹시 늦거나 오늘 약속장소에 나오지 못하겠다는 전화를 하는건 아닐까 궁금했어요.

하지만 난 지금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손톱을 깎고 있는데..

어쩌지? 어쩌지?

갈등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런 갈등을 하기 시작한지 약 25초 후에..

가스렌지위에 물이 끓는 소리도..전화벨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어요..

어?

사실 생각해보면 가스렌지위에 끓이고 있는 물은 보리차용인데 커다란 냄비에 불과 2~3분 전에

불을 붙인것이고 친구도 오늘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그러니 제가 들은것들은 모두 헛것이었던 거예요

또 가스렌지위에 냄비는 커다랗기도하고 물도 가득 들었기때문에 내가 몇 분쯤 늦게 나가서 가스렌지에

불을 끈다고해도 물이 다 졸아서 냄비가 새까맣게 탈일도 없고 더구나 물이 넘쳐 가스렌지 불이 꺼진다해도

금새 온 집안 가득히 가스가 찰 수도 없거니와 요즘 가스렌지들은 불이 꺼지면 자동으로 가스가 차단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전혀 그렇게 안절부절 할일도 아니었어요

또 전화벨소리도 그래요..

그 벨소리가 진짜였다고 해도 화장실에 느긋하게 볼일을 다 보고 나가서 부재중 전화를 확인해서 전화를 해보면 그만인데..

좀전에 나는 왜 25초동안 갈등을 했을까요..

곰곰히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건 예전에 냄비에 물을 끓이다 티비에 넋이 나가 있는 바람에 냄비를 새까맣게 태워버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예요..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고 지금 당장 가스렌지 불을 끌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무의식중에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 난거죠

또 전화는 내가 전화걸기 힘든 사람에게서 기다리던 전화가 왔는데 샤워중이었거나 다른방에 전화를 두고 음악을 크게 듣고 있었다거나 해서 그 전화를 받지 못했던데서 오는 아쉬움이 떠올라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런것들이 단순히 물을 끓이는 냄비와 가스렌지, 약속이 있는 친구에게서 걸려왔을지도 모르는 전화벨 소리 정도면 큰 문제는 아니예요. 말했다시피 설령 냄비를 홀랑 태워먹었다 해도 그까짓 냄비, 더 좋은걸로 하나 사면 되고..부재중 전화 확인해서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면 되거든요..

어쩌면 이 모든 불안의 근원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혹은 내가 어쩔수 없이 놓쳐버리는 삶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대한 불안감과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막 화장실에서 나와 가스렌지를 확인하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의 불을 끄고

부재중 전화 따윈 오지 않은 전화기를 옆에 두고 이글을 썼어요.

좀전에 화장실에서 했던 생각들을..

역시 화장실에선 쓸데 없는 생각이 많이 나네요^^;;

근데 방금 새로운 결론을 내렸죠..그건 내가 바로 소심한 A형이어서 그런거다..-_-;;

2005. 2. 19

난 화장실에 앉아 있어요
지금 당신은 뭘 하고 계실까
부서져 버린 내 마음의 주인은
이미산산조각 나버렸어요
그래요 난 어쩔줄 모르고
또 하루를 살았겠지만
이미 올라와야 할 내 마음의 악기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데요


나를 미워하세요 나를 싫어하세요
나를 미워하세요 나를 싫어하세요
나를 좋아하세요


Sam - 미선이(Drifting,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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