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선승(禪僧)" 현각 스님(右)과 프랑스의 인기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左)가 22일 파리에 있는 베르베르의 자택에서 대담을 가졌다. 한국관광공사 파리지사의 주선으로 이뤄진 대담은 불교, 동양문화, 인간의 삶 등 광범위한 주제를 놓고 자유토론 방식으로 진행됐다. 소설 "개미", "나무"로 널리 알려진 베르베르는 불교와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은 작가이며, 프랑스는 전체 인구의 10%인 60만명이 불교 신자인 유럽 최대의 불교국가다.
베르베르의 자택 곳곳에는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모두 그가 그린 것들이라고 한다. 베르베르는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한쪽 벽에는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았다는 커다란 개미 조각이 걸려 있었고, 거실 피아노 위에는 부처상이 놓여 있었다. 베르베르는 현각 스님과 기자를 맞으며 합장을 했다. 불교 신자냐고 묻자 "나는 종교가 없다. 그냥 버릇이다"라고 답했다. 현각 스님이 이를 보고 "아마 당신은 전생에 불교 신자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리에 앉자 베르베르가 녹차를 권하며 "불교에 귀의하는 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냐"고 물었다. 현각 스님은 "우리가 현재에 있으므로 현실 도피가 아니다"고 답한 뒤 "다만 현재에 미련을 갖지 말고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미련을 흘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베르베르가 "세상이 어지러운데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현각 스님은 "내일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사람은 순간 밖에 살지 못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희망이다."고 답했다. 현각 스님은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나름대로 해석한 기독교 사상도 인용했다. "예수가 어린 아이를 본받으라고 한 것도 어린 아이는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하고 완벽한 삶이다. 오로지 순간(only moment)만이 존재할 뿐이다."
현각 스님은 자신은 "이 순간에 빠져 사는"도구로 선(禪)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다른 종교나 음악, 운동 등을 도구로 삼는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자기와 우주가 하나가 되고, 정신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괘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현각 스님의 말을 적용하자면 베르베르의 "선"은 "상상력"이었다. 그는 상상하는 그 순간 행복을 느끼는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베르베르는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지식은 단순히 배운 것을 기억하는 것일 뿐, 상상력을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각 스님도"맞는 말"이라고 화답했다.
현각 스님은 대학 강연과 프랑스 공영방송 2TV 출연 등 프랑스 일정을 마친 뒤 26일부터 닷새간 영국에 머물면서 옥스퍼드대.런던대 등에서 한국 불교를 주제로 강연하고 BBC 방송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미국 뉴저지주 출신인 현각 스님은 예일대에서 철학과 문학을,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 원장으로 있다.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poleeye@joongang.co.kr">poleeye@joongang.co.kr> 현각 : 예수님께 누군가 물었지요.“마지막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예수님께서는 “그럼 당신은 시작은 어땠는지 이해하고 있나요?”라고 되물으셨습니다.마찬가지입니다.시작과 끝은 같은 것입니다.과거,현재,미래는 결국 ‘현재’라는 시간의 다른 모습입니다.따라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것입니다.
베르베르 : 현재는 그럼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현각 : (대답 대신 손바닥으로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
베르베르 :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세요.
현각 : (다시 탁자를 손으로 탁 친 뒤)과거,현재,미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베르베르 : 그렇다면 수백년 전에 그려진 ‘모나리자’를 현재의 우리가 바라보며 감명을 받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현각 : 좋은 지적이에요.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과거의 현재를 보는 느낌을 받습니다.바로 그것입니다.다빈치는 모나리자를 그리면서 완벽하게 ‘현재’에 충실했기 때문에 우리가 감명을 받는 것입니다.
베르베르 : 스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을 이제 조금 알 듯합니다.새벽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할 때 나는 주변의 모든 것을 잊고 글 속에 빠져 듭니다.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하지요.명상을 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현각 : 그게 바로 명상입니다.당신은 컴퓨터로 일하는 승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나는 그냥 보통 승려이고요.
베르베르 : 스님은 전생에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각 : 신부이거나,승려이거나 그런 영적인 일을 했을 것입니다.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요.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자였고 지금은 머리깎고 승려가 됐지만 내 자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베르베르 : 가톨릭 신자였던 당신이 불교를 접하고,문화와 관습이 다른 나라 한국에서 승려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현각 : 어려움도 물론 있었지요.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나의 스승이신 숭산 스님으로부터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였습니다.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책도 많이 읽었지만 그런 질문을 누구도 하지 않았거든요.결국 그 ‘엄청난’ 질문은 나를 한국으로 이끌었고 내 종교생활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베르베르 : 바보 같은 질문을 한가지 하고 싶습니다.불교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이 아닌지요?
현각 :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이렇게 있습니다.불교에서는 세상에 있되 집착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 나가는 것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얘기지요.
베르베르 : 무저항과 비폭력,명상으로 어떻게 세상의 악을 물리칠 수 있을지요.
현각 : 지금 우리 두 사람이 앉아서 차를 마시는 이것이 바로 평화입니다.창 밖의 새 소리를 듣고 순수한 마음으로 순수한 현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베르베르 : 티베트의 많은 승려들은 중국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결국 종교가 그들을 죽인 셈인데….
현각 : 그들은 종교로 인해 목숨을 잃었지만 이 생에서 몸이 사라진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가장 중요한 가치는 물질(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참 나(眞我)’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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